49.[은퇴준비]요즘 젊은이들에게서 배우는 절약정신 - No Buy January

 

1월이 되면 으레 새해결심들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죠. 술을 잠시 끊는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나 새해 다이어트 결심, 운동결심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런데 올해 미국에서는 조금 색다른, 어찌 보면 조금은 비장하기까지 한 챌린지가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노 바이 재뉴어리(No Buy January)'입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쇼핑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 1월, 말 그대로 1월 한 달 동안 생필품을 제외한 그 어떤 물건도 사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기사에 따르면, 이 키워드의 구글 검색량이 최근 5년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다. 흥미로운 건 이 움직임을 주도하는 이들이 바로 젠지(Gen Z)와 밀레니얼 세대라는 점입니다. 오늘은 우리 자녀 세대, 혹은 손주 세대인 그들이 왜 지갑을 닫아버렸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재정적 지혜는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WSJ기사에 소개된 Brent Parsons씨의 가족 이야기를 잠시 빌려오자면, 그는 네브래스카에서 IT 전문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연봉이 7만 5천 달러 정도지만, 네 아이를 키우며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 일주일에 4일은 도어대시(DoorDash)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한다고 해요. 급기야 그는 가족 신용카드를 잠가버리는(Lock) 극약 처방을 내렸습니다. 가스나 패스트푸드 같은 사소한 지출도 이유를 설명해야만 결제가 되도록 말이죠.

뉴욕의 32세 질리안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재정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외식과 쇼핑을 끊고, 한 달동안 자유롭게 쓸 지출(Discretionary spending)을 300달러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왜일까요? 경제 지표상으로는 소비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인플레이션(Inflation)과 고용 불안, 그리고 AI가 내 일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젊은 세대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No New Things'의 저자 애슐리 파이퍼는 이런 현상에 대해 아주 통찰력 있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식비나 렌트비, 의료비 같은 고정 지출(Fixed expenses)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인 '쇼핑'을 멈춤으로써 삶의 통제권을 되찾으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읽는데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더군요. 우리 이민 세대들도 그랬습니다. 낯선 땅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안 쓰고 아끼는것 뿐이었으니까요. 그때 우리의 절약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면, 지금 젊은이들의 절약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단단한 결심'처럼 느껴집니다. 쇼핑이 취미가 되어버린 시대에, 물건을 사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는 그들의 고백에서 일종의 철학적인 깊이마저 느껴집니다.

사실 은퇴를 준비하거나 이미 은퇴하신 분들에게도 이 '소비 단식'은 꽤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돈을 아끼자는 차원이 아닙니다.

첫째, 소비의 '관성'을 끊어내는 기회가 됩니다. 은퇴 후 수입은 줄어드는데 현직에 있을 때의 소비 습관을 버리지 못해 노후 자금을 갉아먹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딱 한 달만이라도 '필요(Need)'와 '욕구(Want)'를 철저히 구분해보는 연습은 은퇴 생활의 기초 체력을 길러줍니다.

둘째,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아보세요. 외식을 줄이는 대신, 집에서 직접 요리한 소박한 음식을 나누며 친구들을 초대해보는 건 어떨까요? 화려한 식당보다 따뜻한 집밥에서 더 깊은 대화가 오고 가니까요. 재정적 다이어트가 오히려 관계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노 바이 재뉴어리'는 어쩌면 팍팍한 세상이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준 아프지만 귀한 교훈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도 다시 한번 배웁니다. 행복은 쇼핑카트를 채우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안도감에서 온다는 것을요.

이번 주말에는 마트 대신 공원을 산책하며, 돈으로 살 수 없는 겨울의 풍경을 눈에 담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지갑은 닫아도,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1월이 되시길 바랍니다.


댓글

  1. Seed money 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침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의 하루라도 빨리 깨울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답글삭제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