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은퇴준비]뱅가드 리포트가 경고한 '중산층의 위기'


요즘 주위에서 미국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던지 401(K)가 많이 올랐다던지 하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S&P 500 그래프만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된 것 같은데, 정작 주말에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영수증을 받아들 때나 매달 돌아오는 렌트비와 모기지를 낼 때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경기가 좋다는데 왜 내 지갑은 더 얇아지는 기분이지? 혹시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가?"

만약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셨다면, 안심하세요. 그건 여러분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최근에 미국 의 자산 운용사인 뱅가드(Vanguard)에서 발표한 'How America Saves 2024'보고서를 보다가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숫자를 발견했거든요.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페널티를 감수하고서라도 401(k) 계좌에서 돈을 빼야만 했던 사람들의 비율이 3.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대출을 받은 게 아니라, 비상 상황(Hardship Withdrawal)으로 인해 미래의 은퇴 자금을 헐어서 써야만 했던 이웃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Fidelity의 분석 자료도 비슷합니다. 많은 분이 집을 지키기 위해서(압류 방지), 혹은 감당하기 힘든 의료비를 내기 위해 소중한 노후 자금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자산 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정작 우리의 살림살이는 왜 이렇게 차갑게 느껴지는 걸까요? 우리가 느끼는 이 괴리감의 정체, 경제학에서는 이를 'K자형 회복(K-shaped Recovery)'이라고 부릅니다. 한쪽은 위로 뻗어 올라가고, 다른쪽은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양극화 현상이 지금 미국의 경제의 모습입니다.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의 통계에 따르면, 상위 10%의 가구가 미국 전체 주식의 약 93%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식 시장이 호황일 때 그 달콤한 과실은 자산을 가진 상위 계층에게 집중됩니다. 이들의 부는 K의 윗부분처럼 가파르게 상승하죠.

반면, 자산보다는 근로 소득(Active Income)에 의존하는 중산층은 어떨까요? 월급은 조금 올랐을지 몰라도, 지난 몇 년간 누적된 인플레이션은 그 상승분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식료품비, 보험료, 그리고 렌트비까지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 비용이 늘어나면서, 실질적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Disposable Income)'은 오히려 줄어든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식 시장의 축제 속에서도 왠지 모를 빈곤감을 느끼는 진짜 이유입니다.

거시 경제의 거대한 흐름은 개인이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배가 흔들린다고 해서 바다에 뛰어들 수는 없죠.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가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재정 전문가로서, 그리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이웃으로서 제가 제안하는 세 가지 솔루션은 이렇습니다.

첫째,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마세요.

앞서 말씀드린 401(k) 고난 인출은 당장의 급한 불을 꺼줄지는 몰라도, 미래의 숲을 태우는 일입니다. 복리의 마법은 시간과 함께 일합니다. 지금 401(k)에서 1만 달러를 빼면, 단순히 1만 달러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 돈이 20년, 30년 뒤 불어났을 때 될 수 있었던 10만 달러, 20만 달러의 기회비용을 잃는 것입니다. 정말 생사가 달린 문제가 아니라면, 노후 자금 계좌는 '없는 돈' 셈 치고 잊어버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둘째, '식탁'에서 자산과 건강을 동시에 방어하세요.

저는 종종 "집밥은 최고의 재테크"라고 말합니다. 요즘 미국의 외식 물가와 팁(Tip) 문화, 정말 무섭죠? 4인 가족이 외식 한 번만 줄여도 100달러 이상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이 돈을 아껴 S&P 500에 투자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게다가 집밥은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보험입니다. 미국 의료비가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 모두 잘 알잖아요. 건강한 식재료로 직접 요리하는 것은 병원비를 아끼는, 수익률 100%짜리 투자입니다.

셋째, 관계(Relationship)라는 자산에 투자하세요.**

재정 상담을 하다 보면, 돈은 많은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노후를 보내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반면 소박하게 살아도 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분들이 있죠. 그 차이는 '관계'에서 옵니다. 은퇴 준비는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따뜻한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이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든든한 노후 안전망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집에서 함께하는 따뜻한 식사, 돈은 아끼고, 마음은 채우는 최고의 투자가 될 테니까요.

오늘 '미국 중산층의 위기'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꺼낸 것은, 여러분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때, 막연한 불안감은 사라지고 구체적인 희망이 그 자리를 채우기 때문입니다. 뉴스는 매일 위기를 말하지만, 우리의 삶은 뉴스보다 더 강합니다. S&P 500 지수가 아무리 올라도 내 마음이 가난하면 소용이 없고, 반대로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내 중심이 단단하다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401(k) 잔고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저녁, 외식대신 건강한 식재료로 직접 요리한 밥상을 차리는 것, 그리고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이 작은 행동들이 모여 결국엔 '경제적 자유(Financial Freedom)'뿐만 아니라 '삶의 자유'를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오늘이 어제보다 조금 더 부유하고 훨씬 더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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