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경제] 아이 안 낳는 세상, 정말 '돈'이 문제일까요?
우리가 흔히 '저출산' 하면 한국만 떠올리기 쉽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사실 고소득의 선진국들을 포함하여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이 현상은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깊습니다. 각국 정부는 돈을 풀고, 보조금을 주며 아이를 낳으라고 독려하지만 왜 지표는 요지부동일까요? 오늘은 단순히 '돈이 없어서'라는 뻔한 분석을 넘어,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우리의 재정적 미래와 노후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Boston College Retirement Center의 최신 리포트를 통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 합니다.
먼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TFR)입니다. 한 여성이 가임 기간(15~44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를 말하죠. 인구가 현상 유지되는 선인 대체출산율 2.1(Replacement level)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북미, 유럽, 동아시아의 주요 6개국은 이미 1955년에 비해 출산율이 최소 40% 이상 하락했습니다.
2025년 기준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약 1.62명 수준입니다. 70년 전과 비교하면 아이를 낳는 비율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지요.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는 물론, 복지 모델이 잘 갖춰졌다는 북유럽 국가들도 예외 없이 2.1이라는 '마지노선' 아래로 내려가 있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그냥 늦게 낳는 것뿐 아닐까?"라는 희망 섞인 질문에 대해, 통계는 조금 차가운 대답을 내놓습니다. 평생 출산 수(Children Ever Born, CEB)라는 지표를 통해 특정 세대가 평생 낳은 아이 수를 추적해 보면, 최근 세대일수록 이전 세대보다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1995년생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 세대가 같은 나이였을 때 기록했던 출산 수보다 훨씬 뒤처져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나중에 한꺼번에 낳아' 이 간격을 메우기에는 생물학적인 한계와 사회적 여건상 매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흥미로운 통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과거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으면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일이냐 아이냐'의 선택 문제였던 거죠. 하지만 202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데이터를 보면 이 공식이 깨졌습니다.
이제는 여성이 일을 많이 하는 나라라고 해서 출산율이 특별히 더 낮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성의 일자리가 안정된 곳에서 출산율이 소폭 방어되는 모습도 보이죠. 이는 이제 출산 결정이 '일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과 육아를 얼마나 조화롭게 할 수 있느냐'는 사회적 규범의 문제로 옮겨갔음을 시사합니다.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육아 비용이나 가구 소득같은 지표에 집중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더 본질적인 이유로 우선순위의 변화를 꼽습니다. 과거에는 결혼과 출산이 인생의 당연한 과업이었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자아실현'과 '경력(Career)'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 선택지의 다양화 - 여행, 취미, 디지털 기술을 통한 연결 등 아이 없이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옵션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의 상승 - 아이를 가짐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시간, 자유, 경력의 가치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는 뜻입니다.
- 사회적 규범의 변화 -이제는 일하는 여성이 기본인 세상입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투쟁에 가까운 환경에서, 육아는 '행복'보다는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쉽습니다. 문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여전히 너무나 고된 저글링(Juggling)과 같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과 종교적 영향력의 감소까지 더해지면서, 아이를 갖는 것은 인생의 필수 과업이 아닌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현상을 단순히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야"라고 치부하기엔, 우리 세대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큽니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 제도는 기본적으로 일하는 세대가 은퇴 세대를 부양하는 구조(Pay-as-you-go)입니다. 출산율이 지금처럼 낮게 유지된다면, 사회보장기금의 적자 폭은 예상보다 18% 이상 커질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받을 연금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뜻이죠.
많은 정치인이 '현금 지원'을 해결책으로 내놓습니다. 하지만 그 효율성을 따져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가구 소득을 10% 올려주었을 때 출산율은 고작 0.5%에서 4.1% 정도 상승한다고 합니다. 이를 미국 가계 중간소득(약 $85,000)에 대입해 보면, 한 가구당 $8,500달러라는 거금을 줘도 출산율은 1.62에서 1.69로 겨우 0.07포인트 오르는 데 그칩니다. 수천만 가구에 이 돈을 뿌리려면 수천억 달러의 예산이 들 텐데, 결과는 미미하니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정책인 셈이죠.
실제로 캘리포니아,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등의 사례를 보면 유급 휴가(Paid leave) 제도를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낳는 아이의 수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단순히 '돈'이나 '시간'을 조금 더 주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에 역부족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출산율 문제는 단기적인 처방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일, 정체성, 그리고 성취라는 현대적 가치와 '부모가 되는 삶'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제도를 재설계해야 하는 아주 이상적인 답밖에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해결이 더욱 더 어렵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그 변화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릅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파도와 같습니다. 국가가 내 노후를 온전히 책임져줄 거라는 낙관론보다는, 변화하는 인구 구조를 이해하고 나만의 단단한 재정 계획을 세우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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