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은퇴준비] 은퇴 후 가장 큰 적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핸드폰'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한 통계를 보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대상이 사랑하는 배우자나 자녀가 아니라, 바로 손바닥 안의 작은 스마트폰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미국 소비자 연구 학회(Journal of Consumer Research)에 따르면, 미국 성인은 하루 평균 4~5시간을 스마트폰과 보냅니다. 전화기, 컴퓨터, 텔레비전을 모두 합산하면 하루 평균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약 7시간에 달한다고 합니다. 많은 분이 스마트폰 과다 사용을 젊은 세대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시겠지만, Nielsen의 조사 결과는 사뭇 다릅니다. 50세에서 64세 사이의 미국 성인들은 스마트폰, 컴퓨터, TV를 합산한 하루 스크린 이용 시간이 평균 10시간을 넘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젊은 층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일에서 해방되면 핸드폰도 좀 내려놓게 되겠지"라고 기대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은퇴가 자동으로 스크린 타임을 줄여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구조화된 일과가 사라지고 자유 시간이 늘어나면서,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이나 TV에 더 많이 의지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은퇴한 가족이나 지인이 종일 케이블 뉴스를 켜놓는 모습, 많이 들어 보셨죠?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손이 자연스럽게 리모컨으로 가는 것입니다. 은퇴하면 이 디지털 족쇄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직장이라는 강제적인 시간 틀이 사라진 자리를, 소셜 미디어와 뉴스 시청이 채우게 되는 것이지요. 핸드폰이나 TV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어느새 삶의 주인이 되어버릴 때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과도한 스크린 사용은 외로움과 고립감을 심화시킬 수 있고,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와도 연결됩니다. 재정적으로는 완벽한 은퇴 설계를 마쳤더라도, 정작 그 시간을 채울 삶의 설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도파민을 주는 스크린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노후의 가장 큰 불행인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이어질 위험이 큽니다.
저는 이것을 '시간의 기회비용'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습니다. 은퇴 자금을 운용할 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듯, 은퇴 후의 시간도 전략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Retirement Wisdom의 Joe Casey는 은퇴를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조언합니다. 건강, 관계, 배움, 그리고 즐거움이라는 핵심 과목을 정하고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짜는 것이지요. 단순히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나쁜 습관을 끊으려면 의도적으로 '마찰(Friction)'을 만들어야 합니다. 침실에 핸드폰을 두지 않는다거나, 식사 시간에는 핸드폰 사용 금지 규칙을 정해보는 것처럼 작고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지요.
저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쓸데없이 핸드폰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는지 모릅니다. 은퇴는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것이 저절로 완성되는 자동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일할 때보다 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모든 기기를 끊는 '디지털 단식'을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아주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오늘 저녁 식사만큼은 핸드폰을 서랍 안에 넣어두고, 맞은편에 앉은 가족의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거창한 변화보다 그 작은 하루가 은퇴 후의 삶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바꾸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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