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은퇴준비] 성공한 사람이 더 힘든 은퇴 — '잘 쉬는 기술'을 배워야 할 때

 

은퇴를 앞두고 혹은 막 은퇴를 맞이하셨을 때,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제 쉬어도 되는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평생 열심히 일해왔고,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나름의 성과도 이루었는데 막상 달력에서 출근 일정이 사라지자 오히려 무언가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 것. 이 역설적인 감정은, 사실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자주, 더 깊게 찾아옵니다.

최근 WSJ에 실린 Carol Hymowitz의 고백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 수십 년간 저널리스트로 일해온 한 70대 여성의 이야기였는데요. 그녀는 70이후에도 프리랜서 기고, 대학 강의, 연구 펠로우십을 이어가며 사실상 은퇴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팔을 크게 다쳐 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한 달 뒤에는 심장마비까지 왔습니다. 의사는 원인을 '불안'이라고 했습니다. 그 불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타이핑을 못 하게 될까봐, 글을 쓰지 못하게 될까봐, 그리고 일을 잃으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분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특히 미국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한인 중장년층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낯선 땅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자리를 잡기 위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달려왔으니까요. 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자존감이었고, 정체성이었고, 이 사회에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사라질 때 허무함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성공과 인정을 위해 야망을 동력 삼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전에도 그 똑같은 엔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까요? 

Hunter College의 Brookdale Center for Healthy Aging의 Ruth Finkelstein 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커리어가 정체성과 지위를 동시에 제공해온 사람들에게, 일을 멈추는 것은 모든 것을 멈추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챕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회복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회복 과정의 핵심은 '잘 쉬는 기술'을 새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연습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잘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은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성취를 위한 야망 대신, 의미를 위한 열정으로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40년간 금융권과 헤드헌팅 업계에서 일한 한 여성은 은퇴 후 줄리아드 음악학교(Juilliard School)에서 재즈를 배우고, 뉴욕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20시간 이상을 촬영과 편집에 쏟는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갤러리 전시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이건 제 영혼을 먹이는 일이니까요." 인정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 그 차이가 전부입니다. 은퇴의 가장 큰 선물은 '더 이상 유능함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입니다. 전문성을 강요받던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못 해도 상관없는 춤이나 요리, 운동을 시작해 보세요. 

재정적인 관점에서도 이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은퇴 준비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401(k)나 IRA, Social Security 수령 시기 같은 숫자에 집중합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연구들은 은퇴 후 목적의식과 사회적 연결이 없는 사람일수록 우울증, 인지 저하, 만성질환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건강이 무너지면 의료비가 늘어나고, 정성껏 준비한 은퇴 자산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소진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미리 설계하는 것, 그것도 엄연한 은퇴 준비입니다.

WSJ 칼럼을 쓴 저자는 결국 대학 강의를 내려놓고 남편과 스페인·모로코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시니어를 위한 댄스 수업에 나가고 있습니다. 누군가 모임에서 "요즘 뭐 하세요?" 물으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춤을 추고 있어요." 화려한 직함도, 빛나는 성과도 아닌,그 단순한 한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해방감이 담겨 있는지요.

당신은 은퇴 후 어떤 한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그 답을 미리 생각해두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은퇴 준비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하느냐(What do you do?)"라는 질문에 더 이상 직업으로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여러분의 진짜 인생이 시작됩니다. 이제는 "나는 춤을 춰요", "나는 기타를 배워요"라고 말할수 있는 여러분이 되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공들여 쌓아온 재산은 바로 이 '야망 없는 행복'을 지탱해 줄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숫자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대신 그 숫자가 선물할 '오늘의 평화'를 잘 누리시길 바랍니다. 

댓글

  1. 은퇴를 좀 일찍 하고 이런저런 방황(?)을 했던 시간이 거의 10년이네요. 코로나라는 특별한 시기를 거쳤다는 변명을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제야 뭔가를 특히 새로운 것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각만 했던 몇 가지를 시작했습니다. 일단은 잘할 필요없고 완벽할 필요 전혀 없고 남의 눈보다 나의 눈을 통해 보이고 느껴지는 모습에 집중하려합니다. 정말로 남들은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지속성 꺾이지 않는 마음이 제일 중요한것 같아 다만 하루에 5분이라도 짬을 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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