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하버드가 내 인생에서 가장 덜 중요한 일이 되기를 - 코난 오브라이언의 역대급 졸업식 연설
어제 5월 28일 하버드대학교 375회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올해 졸업식 연사는 하버드 85년 졸업생이자 유명 코미디언인 코난 오브라이언(Conan O'Brien)이었습니다. 그는 연단에 오르자마자 요즘 하버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법적 분쟁을 정면으로 꺼내서 특유의 날카로운 해학과 짓궂은 농담으로 캠퍼스를 완전히 뒤흔들었습니다. 지적인 유머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풍자, 그리고 마지막에 던진 묵직한 메시지까지, 그야말로 명연설의 진수를 보여주었는데요. 오늘은 그 흥미진진했던 현장의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이번 연설이 특히 화제가 된 이유는 현재 하버드를 둘러싼 민감한 정치적 상황을 정면으로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미국의 연방 정부는 유학생 입학 제한이나 연구 기금, 그리고 학내 갈등 이슈 등을 이유로 하버드 대학에 소송을 제기하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단상에 오른 코난은 이 무거운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틀어버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내가 오늘 하버드를 방어하러 온 줄 알지만 틀렸다. 나도 하버드를 고소하겠다!"라고 선언한 것이죠.
그가 내세운 고소 사유가 정말 걸작입니다. 대학 신입생 시절 기숙사에서 자신을 맞이했던, 딱딱한 '철제 침대'와 형편없었던 식당의 '생선 스파게티', 그리고 대학 시절 내내 신통치 않았던 자신의 연애 생활을 보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소송이 미국 대통령이 제기한 소송보다 훨씬 더 타당성이 있다고 확신한다"는 그의 외침에 졸업식장은 그야말로 폭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연방 정부의 유학생 제한 조치를 겨냥해, 외국의 문화가 미국에 기여한 바를 역설적인 유머로 꼬집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미국 문화에 기여한 게 뭐가 있느냐? 음악, 문학, 미술, 요리, 패션, 건축, 과학적 발견, 그리고 우리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신념의 핵심을 제외하면 말이다"라면서, 만약 유학생들이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쯤 영국 성공회식 지티 파스타를 먹으며 아주 건전한 '칼뱅주의 레게 음악'을 듣고, 금지된 '루터교 람바다 춤'을 추고 있었을 것이라며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거대한 권력을 향해 유머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휘두른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좌중을 웃기던 코난은 연설 후반부에 이르러 아주 진지하고 엄숙한 톤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우리가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진단하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겸손과 연대(Modesty and Connection)'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이 이 자리에 선 것은 결코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수많은 가족과 동료, 심지어 악플러(Haters)와 아주 작은 우연들이 겹친 '운' 덕분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막 사회로 나가는 후배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내 바람은 하버드가 여러분에 대해 사람들이 아는 '마지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 대해 아는 것 중 '가장 덜 중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취를 단순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화(Metabolize)'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졸업장이 인생의 훈장으로만 남아 있으면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코난 오브라이언의 이 울림 있는 메시지를 들으며, 저는 은퇴준비를 앞둔 분들과 나누던 많은 대화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식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듯, 은퇴 역시 우리 삶의 거대한 경력에서 치르는 또 하나의 '졸업식'이기 때문입니다.
현직에 계실 때 가졌던 화려한 직함, 높은 연봉, 사회적 지위는 은퇴의 문을 나서는 순간 코난의 말처럼 내 인생에서 '가장 덜 중요한 일'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명함이 사라진 뒤, 온전한 '나'로서 새로운 막을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죠.
이 거대한 전환기를 당황하지 않고 통과하려면, 과거의 타이틀 대신 내 삶의 진짜 알맹이를 단단하게 채워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늘 강조하는 세 가지 핵심 자산입니다.
첫째는 시장의 거친 변동성 속에서도 내 삶을 유연하게 지탱해 줄 재정적 회복탄력성입니다. 현직의 화려함에 기대어 무리한 투자를 이어가기보다, 은퇴 후 기본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받쳐줄 견고한 현금흐름의 안전망을 미리 구축해 두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둘째는 그 어떤 자산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건강 자산'입니다. 아무리 은퇴 잔고가 두둑하더라도 몸이 아프면 그 자산을 누릴 기회조차 잃게 됩니다. 거창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매일 아침 동네를 가볍게 산책하고, 자극적인 외식 대신 제철 채소와 담백한 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챙기는 작은 습관들이 노후의 가장 듬직한 재산이 됩니다. 건강을 잃으면 재정적 계획도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는 통장 잔고만큼이나 중요한 '인간관계의 밀도'입니다.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뒤 찾아오는 고립감은 생각보다 큽니다. 대단한 사교 모임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가끔 만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웃, 은퇴 후 생긴 여유 시간에 동네 커뮤니티에서 만나 함께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평범한 친구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이런 일상적인 관계의 잔고가 채워져 있을 때, 우리의 노후는 외롭지 않고 진정으로 풍요로워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 좋게 들어온 패를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저는 그 인간적인 본능에 맞서 싸워온 덕분에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 자발성, 그리고 겸손에 대한 진정한 헌신이 저를 풍요로운 삶으로 이끌어 주었다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코난의 이 말은 졸업식 연설이라기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의 진솔한 고백처럼 들렸습니다. 하버드라는 타이틀이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될 때 비로소 진짜 성장이 시작된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 역시 과거의 명함을 내려놓는 그 순간부터 진짜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립니다.
단단한 재정과 건강, 그리고 따뜻한 이웃들과 함께 그 새로운 막을 써 내려갈 여러분의 여정을 전문가로서, 그리고 이웃으로서 언제나 응원합니다.
* 다음은 위의 연설을 소개한 한국뉴스입니다.
"트럼프 XX?" "지금 미국은!" 역대급 찍은 '하버드 졸업 연설'.."나 왜 왔게?" 코난 오브라이언 환호성 터진 이유 / SBS / 트럼프 NOW
* 아래는 연설원문입니다.
Conan O’Brien Delivers the Commencement Address | Harvard Commencement 2026
제가 코난 오브라이언의 말에 눈물을 흘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답글삭제그의 2011년 다트머스 졸업식 연설을 들으며 참으로 말하는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하버드에서의 연설은 말에 power를 실감했습니다. 해학적이면 요즘말로 돌려깐다거나 negative 한 면이 가까운데 어떻게 저렇게 승화시켜서 감동을 줄까요. 제가 느낀 것은 한마디로 겸손의 중요성이고 그것이 모든 인간이 가져야할 최고의 덕목이라는 거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즐기고 나눌 수 있는 나머지 삶을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늘도 블로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