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은퇴준비] 같은 은퇴, 다른 고민 - 왜 남편은 불안해하고 아내는 즐거울까?
최근WSJ에 실린 한 은퇴 부부의 기사가 제 마음을 한참 머물게 했습니다. 30년 넘게 기자로 일한 남편 스티브와 교사였던 아내 카렌의 이야기인데요. 같은 날 은퇴해서 같은 집에 사는데, 두 사람이 느끼는 은퇴의 풍경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은퇴를 맞이한 부부가 서로 다른 온도 차로 겪는 '심리적, 재정적 변화'를 아주 생생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은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느긋한 아침 커피? 아니면 가보지 못한 곳으로의 여행? 하지만 실제 은퇴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우리를 기다리는 건 예상치 못한 '복병'들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이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은퇴의 다른 모습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남편 스티브는 은퇴 후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으로 '진공 상태(The Vacuum)'를 꼽았습니다. 평생 나를 지탱해주던 '직업적 정체성'이 사라진 자리에 거대한 허무가 찾아온 것이죠. 파티에서 누군가 "어떤 일을 하세요?"라고 물을 때, 자신이 마치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합니다. 반면 아내 카렌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은퇴 전부터 퀼트, 요리, 봉사활동 같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은퇴는 단순히 일을 그만두는 사건이 아니라, 나의 '사회적 근육'을 '개인적 근육'으로 교체하는 시기입니다. 직함이 사라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을 미리 준비해 보세요. 그것이 요리든, 정원 가꾸기든, 혹은 새로운 공부든 상관없습니다. 나의 쓸모를 스스로 정의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스티브는 또 하나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현직에 있을 땐 그 많은 일을 하루 만에 해치웠는데, 이제는 방문 하나 고치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흐릅니다. 흥미로운 점은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만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사실입니다.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여행을 하거나 낯선 이와 대화를 나눌 때, 우리 뇌는 그 순간을 더 진하게 기록합니다.
재정 전문가로서 제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바로 '돈'에 대한 부부의 시각차였습니다. 스티브는 40년 동안 저축(Saving)만 하다가 갑자기 돈을 쓰는(Spending) 단계로 전환하는 것에 엄청난 불안을 느낍니다. 전문가가 "자산이 충분합니다"라고 말해줘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한 것이죠.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산 보존 편향(Asset Preservation Bias)' 때문입니다. 평생 모으기만 하던 사람에게 인출(Withdrawal)은 마치 내 살을 깎아 먹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음을 제안드립니다.
- 현금 흐름의 시각화 - 막연한 총자산 수치보다, 매달 내 통장에 꽂히는 '현금'의 형태로 일부 자산을 재구성해 보십시오. 평생보장되는 연금으로 마음껏 쓸 수 있는 나의 한달 지출규모를 정할 수 있습니다.
- 가치 있는 소비의 우선순위 -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경험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금 쓰는 이 돈이 버려지고 없어지는 돈이 아니라 내 인생의 경험으로, 좋은 추억으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물건을 사는데 소비하는 것 보다 가치있는 경험에 투자하십시오.
아내 카렌은 말합니다. "은퇴는 180도 변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나로서 살아가는 과정이다"라고요. 은퇴 준비는 단순히 통장 잔고를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을 때 충만한지, 그리고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을 어떻게 지혜롭게 운용할지 설계하는 종합 예술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스티브처럼 막막한 '진공 상태'를 지나고 계신가요? 아니면 카렌처럼 새로운 설렘을 준비 중이신가요? 어떤 단계에 계시든 괜찮습니다. 그 치열한 고민의 끝에 더 단단해진 여러분의 '두 번째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여러분의 풍요로운 노후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제 블로그글” 30. [은퇴준비] '탈출'하시겠습니까 '출발'하시겠습니까? - Retire From vs. Retire To” 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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