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자기계발]AI 시대, 우리는 어떤 산을 오를 것인가 - 하버드 졸업식에서 들려온 다른 목소리들

어제 글에서 코난 오브라이언의 풍자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졸업식 연설을 소개했습니다. 근엄한 유명인사가 나와 "여러분의 미래는 밝습니다"로 시작해서 AI를 잘 활용해야 한다느니 변화에 적응하라느니 하는 식상한 이야기가 아니라, 고급진 해학과 인생의 지혜를 전해주는 명연설이었습니다. 코미디언이란 직업을 다시 보게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난 외에도 올해 하버드 졸업식에는 초청연사들의 수많은 연설이 쏟아졌는데, 놀랍도록 공통적인 주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AI"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목소리는 하버드 총장 앨런 가버(Alan Garber)였습니다. 졸업식 전날 열린 학위수여 기념 예배에서 그는 연설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저와 Claude가 며칠 동안 이 연설문을 함께 작업했습니다. 그런데 졸업식 분위기를 보니 혼자 하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지금부터 발휘되는 지성은 모두 인간의 지성입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웃음 뒤에 그는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1903년, 한 논평가가 엘리베이터, 철도, 전신(telegraph)을 두고 "노력 없는 시대"가 왔다며 한탄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몽블랑 기슭에 열기구 관광이 생겨 아무 노력 없이 10분 만에 정상 높이에서 주변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자, 힘겹게 눈 덮인 비탈을 오르는 등반가들을 비웃게 됐다는 것이지요. 그 논평가는 이것이 인류에게 "우울의 낙인"을 찍을 것이라고 개탄했습니다.

가버 총장은 오늘날 AI를 둘러싼 불안이 바로 그 열기구와 닮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떤 산은 여전히 직접 오를 가치가 있지 않겠냐고. AI가 데려다 줄 수 있는 풍경이 있고, 오직 스스로 올라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힘겹게 눈 덮인 비탈을 오르는 것, 미끄러지다 발판을 찾는 그 과정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새로운 이해의 경지에 힘겹게 도달할 때, 우리는 인간의 잠재력을 찬양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고유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다른 장소에서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가 등장했습니다. 코미디언 로니 치엥(Ronny Chieng)이었습니다. The Daily Show 진행자이자 에미상 수상 배우인 그는 연단에 오르자마자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그냥 한마디 해도 될까요? F*** AI, F*** AI, F*** AI!"(네 맞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그 F word입니다.) 졸업생과 가족들이 환호로 답했고, 치엥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다른 졸업식 연사들은 AI를 마스터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자신은 반대로 이야기하러 왔다고요. 여러분 세대의 사명은 AI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물론 AI 전부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의학이나 물리학 연구에 쓰는 거라면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진짜 문제로 본 것은 이메일 한 통, 연설문 한 편, 팟캐스트 한 편까지 죄다 AI에 맡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재능 없는 사람들은 AI로 온갖 걸 만들었다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는데,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고요. 창조하는 것, 그게 바로 재미있는 부분이라는 겁니다. 코미디 글쓰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무엇이냐고요? 농담의 퍼즐 조각들을 맞춰가는 과정과,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이라고 했습니다. 왜 AI에게 그 기쁨을 빼앗기고 싶겠냐고요.

이 두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습니다. 한 사람은 대학 총장으로서 조용하고 철학적으로, 다른 한 사람은 코미디언으로서 거침없고 통쾌하게 말했지만,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생각하는 즐거움, 직접 해내는 보람, 그 과정에서 쌓이는 진짜 실력을 AI에게 넘겨주지 말라는 것이지요.

치엥이 연설에서 직접 인용한 MIT 연구 "Your Brain on ChatGPT"도 같은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합니다.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단기적으로는 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지고 창의성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이를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편하게 빌려 쓰는 만큼, 나중에 더 비싸게 치른다는 뜻이지요. 재정 계획에서 우리가 늘 경계하는 그 함정과 꼭 닮아 있습니다.

치엥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미래에 AI로 실질적인 이점을 얻으려면 최소한의 지적 기반이 필요하다고요.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점점 더 바보가 될 거라고, 특유의 독설로 경고했습니다.

그렇다면 가버총장이 이야기한 그 산은 우리에게 어떤 산일까요?

저는 재정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이 질문을 자주 떠올립니다. 요즘은 AI에게 "나 은퇴 준비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물으면 꽤 그럴듯한 답이 나옵니다. 저축 비율, 투자 배분, 사회보장 수령 시기까지 척척 정리해 줍니다. 그런데 그 답이 진짜 내 답이 되려면 한 가지가 필요합니다.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얼마나 쓰며 살고 싶은지, 무엇을 포기할 수 있고 무엇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지, 이것만큼은 내가 직접 씨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I는 지도를 펼쳐줄 수 있지만, 어느 산을 오를지는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노후 준비도 그렇습니다. 숫자를 계산하는 것은 AI가 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60대의 내가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입니다. 그 고민을 AI에게 넘겨버리면, 어느 날 그럴듯하게 설계된 노후 계획을 손에 쥐고도 그것이 왜 내 것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가버 총장의 말처럼, 열기구를 타도 좋습니다. 편리한 도구는 얼마든지 활용하면 됩니다. 다만 어떤 산만큼은 직접 발을 딛고 올라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미끄러지고, 발판을 찾고, 숨을 고르며 오르는 그 과정이 결국 정상에 올랐을때 볼 수 있는 그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어 주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어떤 산을 직접 오를 것인지 그 질문 하나를 붙들고 사는 것, 그게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

  1. 오늘 블로그를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는 “사람냄새가 난다“라는 표현입니다. 어떤 학생이 인공지능의 도움없이 paper를 썼는데 교수님이 인공지능이 쓴것이라면서 점수를 주지않아 억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양쪽에게 다 이유가 있었겠지만 학생이 이미 인공지능의 생각 화법에 젖어있었던것은 아니었나라는 나 나름의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여기저기 사용되는 메타인지라는 용어입니다. 정확한 정의를 찾아보니 철학적이고 깊은 의미이며 살아가는데 중요한 개념이라 생각되더라고요. 재정도 메타인지를 가지고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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