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은퇴준비] 수능은 재수가 되지만, 은퇴는 재수가 없습니다-인생을 관통하는 평행이론
해마다 11월이 되면 문득 한국의 차가운 공기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쌀쌀한 바람, 교문 앞의 긴장감, 그리고 자녀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던 부모님들의 모습. 바로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 날의 풍경입니다.
미국에서 재정 상담가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저는 종종 우리네 인생의 ‘은퇴 준비’가 한국의 입시 전쟁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말입니다.
한국에서 우리는 12년이라는 긴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 단 하루의 시험을 치릅니다. 그 결과에 따라 대학이 결정되고, 전공이 정해지며, 사회생활의 출발선이 달라지곤 했지요. 흥미롭게도 미국에서의 은퇴 준비는 이 과정의 ‘확장판’과 같습니다.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으려면 국어, 영어, 수학 같은 기초 과목이 탄탄해야 합니다. 은퇴 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정 관리에서의 ‘국영수’는 바로 401(k)나 IRA 같은 세금 우대 은퇴 계좌(Tax-Advantaged Accounts)입니다. 어떤 분들은 기초를 건너뛰고 비트코인이나 개별 주식 대박 같은 ‘요령’에만 몰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초 과목 점수 없이 명문대를 가기 어렵듯, 꾸준한 현금 흐름(Cash Flow) 관리와 절세 계좌 활용이라는 기본기 없이는 안정적인 은퇴라는 결과를 얻기 힘듭니다.
기초가 튼튼하다면, 그다음은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한 ‘심화 학습’이 필요합니다. 남들이 다 푸는 문제만 맞춰서는 고득점을 받을수 없으니까요. 은퇴 준비에도 이런 ‘쪽집게 과외’ 같은 전략이 존재합니다.Roth Conversion(로스 전환)과 HSA(Health Savings Account) 그리고 생명보험을 은퇴계좌로 활용하는 방법등 다양한 심화학습으로 고득점을 노릴 수 있습니다.
Roth Conversion은 당장은 세금을 내더라도 미래의 불확실한 세율 위험을 제거하는, 마치 고난도 수학 문제를 미리 풀어두는 전략과 같습니다. 또한, HSA는 은퇴 후 가장 큰 복병인 의료비를 해결해 주는 ‘트리플 절세(Triple Tax Advantage)’ 혜택을 제공합니다. 남들이 놓치기 쉬운 이 ‘킬러 문항’을 잘 공략한다면, 여러분의 은퇴 성적표는 단순히 ‘합격’을 넘어 고득점으로 이어져 풍요로운 노후가 될 것 입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공부한 친구를 고3 때 벼락치기로 따라잡기란 불가능합니다. 재정의 세계에서도 시간은 절대적인 무기입니다. 복리(Compound Interest)의 마법은 일찍 시작한 사람에게만 그 문을 열어줍니다. 20대, 30대부터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저축한 사람과, 은퇴를 코앞에 두고 50대에 부랴부랴 시작하는 사람의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물론 미국 세법에는 50세 이상을 위한 추가 불입(Catch-up Contribution) 제도가 있습니다. 늦게라도 더 많이 저축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제도입니다. 더 늦은 60대를 위한 Super catch up도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것만으로는 잃어버린 30년의 복리 효과를 온전히 만회하기 어렵습니다. 벼락치기는 통하지 않는 30년 프로젝트인 것입니다.
"수능은 재수가 되지만, 은퇴는 재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수능은 한번 망치면 재수를 할 수 있습니다. 삼수도 가능합니다. 1~2년 늦어지는 것이 당시에는 큰일처럼 느껴져도, 긴 인생에서 보면 만회할 기회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은퇴는 다릅니다. 은퇴 생활에는 ‘재수’가 없습니다. 은퇴 시점에 이르러 "준비가 부족했으니 다시 30대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겠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준비된 자금이 부족하다고 해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치열하게, 그리고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있었죠.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장 잔고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은퇴가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노후의 행복은 재정적 안정이라는 토대 위에, 건강(Health)과 사람 사이의 관계(Relationship)라는 기둥이 섰을 때 완성됩니다. 돈은 은퇴 생활의 성적표일 수는 있어도, 행복의 보증 수표는 아닙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은퇴 모의고사’ 성적은 어떻습니까? 혹시 너무 늦었다고 불안해하고 계신가요? 다행인 것은 아직은 모의고사이고 실제 수능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재정 상태를 점검하고, 전문가와 함께 부족한 기초를 다지고, 심화 과정을 보충한다면, 여러분의 은퇴 성적표는 분명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능 날 아침의 그 간절했던 마음으로, 오늘 여러분의 계좌를 한 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은퇴 준비가 고득점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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